Saturday, May 29, 2010

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

 
"나는 다양한 미래들에게(모든 미래들이 아닌)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을 남긴다." 나는 즉시 깨달았지요. "다양한 미래들(모든 미래들이 아닌)"이라는 이 구절은 내게 공간이 아닌 시간 속에서의 무한한 갈라짐을 연상하게 만들었지요. 나는 그 작품을 전체적으로 다시 한 번 읽고 나서 나의 생각에 대해 확신을 가지게 되었습니다. 모든 허구적 작품 속에서 독자는 매번 여러 가지 가능성과 마주치게 되는데, 그는 하나를 선택하고 다른 나머지를 버리게 됩니다. 취팽의 소설 속에서 독자는 모든 것을 -동시에- 선택하게 됩니다. 이렇게 해서 그는 다양한 미래들, 다양한 시간들을 선택하게 되고, 그것들은 무한히 두 갈래로 갈라지면서 증식하게 됩니다. ...
확실한 것은 그가 단 한 차례도 "시간"이라는 단어를 쓰지 않았다는 사실입니다. 왜 그러했는지에 대한 해명은 명백하게 드러납니다. 취팽 스스로 생각했던 것처럼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]은 우주에 대한 하나의 이미지입니다. 그것은 불완전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거짓된 이미지는 아닙니다. 당신의 조상은 뉴턴이나 쇼펜하우어와 달리 획일적이고 절대적인 시간에 대해 믿지 않았습니다. 그는 시간의 무한한 연속들, 눈이 핑핑 돌 정도로 어지럽게 증식되는, 분산되고 수렴되고 평형을 이루는 시간들의 그물을 믿으셨던 거지요. 서로 접근하기도 하고, 서로 갈라지기도 하고, 서로 단절되기도 하고, 또는 수백 년 동안 서로 알지 못하기도 하는 시간의 구조는 모든 가능성을 포괄하게 되지요.
 
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,
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,
[픽션들] 중.
 
 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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